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만 겨우 나와서 식당 종업원 생활을 하던 나는 열 여덟살 때 부터
식당 종업원일을 그만두고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다.
이삿짐을 나르는 일이란 나로서는 그런대로 괜챦은 직업이었다.
퇴근 시간이 따로 정해진 일이 아니라서 조금 일찍 일을 마치면 책 볼 시간이 생기기 때문에 나는 그 틈새 시간을 놓치지 않고 공부를 했다.
그 결과 스무살에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독학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다음은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보아야 하는데 공장을 다니며 기술도 배우고 공부를
하기에는 야근이나 철야로 공부하는데 걸림돌이 많아 그냥 이삿짐을 나르며 공부를 했다.
그러기를 몇 년, 나는 마침내 스물 여덟살에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을 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는 문제가 저만치서 웃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길을 건너다 중앙선을 침범하여 내리막길을 달려오던 버스에 치였고
급기야 6개월 이상을 물리치료를 받으며 병원에 입원을 했다.

퇴원은 했지만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나는 이삿짐 센타를 그만두고 화물차를 구입했다.
화물차를 운전하며 주차장 생활을 하는 일은 이삿짐을 나르는 일 보다 그리 힘들지 않았다.
짐을 실어다 주고 다시 주차장에 와서 내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순번제 일이라
나는 기다리는 시간에 책 읽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즐겁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덧 내 나이 마흔을 넘어서면서 나는 결심을 했다.
회갑전에는 박사과정을 마치자. 사람으로 태어나서 동물과 다른 것은 무엇인가?
공부를 하는 즐거움 아닌가? 그렇다면 대학교를 꼭 가야겠다.
그런데 아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해서 나 혼자 트럭운전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공부하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한동안 망설이던 무렵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나에게 "너 공부하지 않을래?"라고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 속엔 늘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나는
'이 친구, 혹시 무슨 묘책이라도 있나?' 라고 기대하면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말에 따르면, 외국어대학교의 전통과 명예를 걸고 사이버외국어대학교가
새로 생기는데 외국어대학교는 다른 대학과는 달리 학생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한번 응시해보라고 간곡히 권했다. 또한 일반 오프라인 대학교에서는
강의를 한번 듣고나면 두번 다시 못듯지만 사이버대학은 집에서 컴퓨터로 혼자 공부하기 때문에 날마다 여러번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아무때나 몇 번이고 강의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여건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학비가 걱정이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데다가 불경기라 일도 예전 같지가 않았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친구가 학비의 절반을 보태주겠다고 말했다.
나로선 정말 뜻밖의 제의 였다. 나는 너무 고마웠다.
나머지 절반 쯤은 어떻게든 해결할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돈은 언제 갚을까?"
"너는 글재주가 있으니까 혹시 노벨상이라도 타서 상금 나오면......" 아주 편하게 말했다.
술집을 나오던 그날, 겨울 칼바람이 매섭게 눈을 찔렀다. 나는 그만 펑펑 울고말았다.

나는 곧바로 사이버외국어대학교에 응시원서를 냈다.
혹시 지원자가 많아 떨어지는게 아닌지......
검정고시 출신에다가 이렇다 할 자격증 같은 것도 없는 나로서는 초조한릉 금할수 없었다.
얼마후에 불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참으로 허탈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는 대기번호가 몇번이냐고 묻고는 그 정도라면
추가모집에 합격할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해주었다.
과연 며칠후 친구말대로 추가모집에서 합격이 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사이버외국어대학교 1기 입학식 날.
나는 대학교정을 이삿짐이나 책상, 의자등을 날라주거나
친구들이나 형과 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
혹은 그들을 만나러 갈 때 몇 번 가 본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내가 주인공이 되어
그 입학식에 교정을 밟고 있다니 눈물이 날 듯 기분이 좋았다.
"라일락 꽃 향기를 날리던 날 교정에서 우리는 만났소. 비가 좋아 빗속을 걸었었고
눈이 좋아 눈길을 걸었소......"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입학식에 참석을 했다.

입학식이 끝난 후에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고 그 후 학과장님실에 모여서
본격적인 자기 소개와 일본어과를 지원하게 된 동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어로 공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제는 백발이 되신 아버지의 정서를
일본어를 배우며 좀 더 가까이 이해하고 싶었고 또한 친구 아버님이 칠순이 넘으신 나이에도 일본어 번역을 하고 계시는데 댁에 들리면 일본어로 쓰여진 책이 너무 많아 직접 번역을 하면서 그 책을 다 읽고 싶었으며 나 역시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있으니만큼 내 글을 일본어로 쓰고자 해서 일본어과를 지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학비의 절반을 보태준다는 말에 힘 입어 학교를 들어오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왜 자꾸 눈물은 흐르는지, 울먹임을 애써 감추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의외로 놀란 것은 나보다 나이많은 학우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공부에는 나이가 따로 없으며 공부란 평생하는 것이구나 라고 실감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은 나에게 있어 마치 천국과도 같았다.
실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다니는 학교라는 것이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게다가 토요일이면 학교에 가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원어민과 회화를 하는 즐거움은
사이버대학교니 컴퓨터로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있던 나에게 아주 상큼한 기쁨 이었다.
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고민거리는 직장이 문제였다. 화물차를 운전하므로 토요일을 학교서 보내고 나면 일요일은 어차피 쉬는 날이고 그 다음 월요일에 순번이 맨 끝으로 걸린다는 치열한 생계와의 싸움이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쉬면 이 불경기에 생활비를 얼마나 집에 가져다 줄 수 있을지가 골치아팠지만, 자기차를 가지고 있어서 쉬고 싶을 때 쉴수 있는 이점을 활용하여 우선은 공부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자체야말로 투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토요일을 투자한 만큼 기쁨이 더 크리라는 확신이 학교에 오면 올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나 엠티 간다!
정말이지 뜻 밖의 기쁨 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직장인들이고 게다가 주부들도 많으며
사는 곳이 저마다 다를텐데 과연 모두 모일 수 있을까?
몇 명이나 갈 수 있을까를 의심했는데 학우들은 의외로 많이 모였고 직장 때문에 늦은 학우들은 차를 가지고 충남 대천 엠티 숙소까지 와 주었다.
마흔살이 넘은 나이에 다니는 학교에서 난생 처음 가보는 엠티는 나에겐 몇날 며칠 동안을
가슴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한 이벤트였다.
스물다섯살 때 그당시에 대학 다니던 친구를 따라서 경기도 대성리에서 열렸던 엠티에
구경간 적은 이었으나 내가 직접 엠티라는 것을 가게 될 줄이야......
나는 소풍가기 전 날 마음졸이며 날씨를 걱정하던 소년으로 돌아갔다.
엠티 당일 하늘도 내마음을 읽었는지 걱정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고
나는 "엠티를 다녀와서"라는 자작시를 남기는 행운을 얻었다.

엠티를 다녀와서 / 김성우

밥이 익어가는 냄새가 났다
자아가 소멸해 가는 대천 바닷가
밀림의 처녀지처럼 속삭이는 파도
나는 학우들보다 조금 먼저와서
해물칼국수와 소주 1병을 마셨다
파도는 뻐꾸기 울음 소리를 잠재우고
내 마음은 40대 중반이 아닌 새내기일 뿐
성산대교 아래를 날으던 갈매기가
어느새 대천 앞 바다를 날아다니고 있다
성산대교 위를 지나던 엠티 버스를 따라 온 것일까
나타나지 않는 도사린 자취
1박 2일의 밤은 소주에 길들여진 채
인간적인 삶을 위한 태풍의 눈처럼 수평선 끝에 머물러 있었다.

학교생활은 꿈처럼 지나갔다.
그러던 중 일본 벳푸 대학교 하계어학연수 소식을 들었다.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즐거움은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하는 정갈한 맛이었다.
사실 그냥 컴퓨터로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고 들어온 학교에서 이런 엄청난 혜택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사이버외국어대학교에서 어학연수라......
학교에 대한 신뢰감이 쌓이면서 이 학교에 1기로 입학했다는 흐뭇함과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경비가 문제였다.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난생 처음 일본두 가보고, 해외로 가는게 이번이 처음인데 어떻게 안될까?"
아내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경비는 어떻게 해보겠으니 일본가서 좋은 경험 많이 하고
오라고 했다. 난 만만세를 불렀다.
게다가 학교에 들어와서 알게된 어느 학우가 얼마간 보조해줄테니 갚을 생각 하지말고 재미있게 다녀오라며 적극 권유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또 함께 가는 학우 중 나이가 연배이신 학우 한분이 김성우씨가 먹는 건 내가 모두 책임질테니 아무 걱정하지말고 함께가서 즐겁게 공부하고 오자고 했다.
여기 학교가 좋으니 학우들도 좋은 학우들 뿐 이고 나는 두번 세번, 아니 여러번 감동을
받았다.

불혹에 나이에
공부하는 큰기쁨을 내게 안겨준 학교 측과 힘들 때마다 친절한 웃음으로서 공부의 결과는
4년 뒤에 얻는다면서 지금 당장은 눈에 띠지 않아도 4년 뒤에 여러분은 타의추종을
불허할만큼 좋아질거라며 늘 곁에서 격려해 주신 교수님들, 1대1 질문과 답변을 통하여
혹은 문제풀이를 통하여 어떤 질문에도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시는 튜터선생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또한, 그동안 세상에 대해 불신과 원망만을 갖고 살았던 나에게 학교를 통해
정말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게 해 준 착한 학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알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느낀 감동을 이러게 글로 표현할수 있도록 학생수기 공모전의
기회를 마련해 주신 학교측에게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며
사이버외국어대학교에 다니게 된데 더없이 자랑스럽기만함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친다.